십자가 형벌은 어느정도의 고통이었을까?

십자가 형벌은 어느정도의 고통이었을까?


예수님이 실제로 당하신 십자가 형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들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그림이나 사진들을 통해 십자가의 형벌에 대해 어느정도 생각하는 기준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십자가의 형벌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매우 잔혹하고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알아야,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 담긴 우리르 향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루서야 했던 그 사명, 그 깊은 사랑을 오늘 십자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하는 이유


'패션오브크리아스트'라는 영화를 보셨었나요?
제가 20대를 막 시작하는 시기에 패션오브크리이스트가 개봉했었습니다. 성경적인 영화가 한국 영화관에 입성한 것이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 이유에는 감독인 '멜 깁슨'의 명성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하지 않았었나 생각해봅니다. 
제가 패션오브크라이스트 라는 영화를 이야기 한 것은, 영화 속에서 재연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고통이 너무나도 끔직했었기에 아직까지도 제 머릿속에 잔상이 또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가 과연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난의 깊이를 다 재연할 수 있었나요? 팔이 탈골되고, 숨 쉴때마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숨조차 쉴수 없던 십자가상의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영화상에서 흐르는 피로 우리는 짐작 가능할까요?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합니다. 딱 그정도로만 알죠.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형의 시작

십자가는 고대로마의 사형방법 중 하나입니다. 로마에서 기원전 1세기 말 식민지인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을 공식 채택했는데 처음에는 이런 형태가 아닌,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고통을 주는 체벌수준이었던것이 기원 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대한 처형방법으로 성격과 수준이 바뀌었습니다.
70년 티투스 장군은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면서 포로들을 매일 500명씩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 만한 공간과 나무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형수들이 많았다고 하죠.



십자가의 고통

1. 죽음보타 끔찍한 채찍질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요 19:1)

로마 채찍의 특징은 당시 가죽 끈 끝에 납이나 뼈조각, 금속 가시 등이 달려 있어 피해자의 살을 갈라내는 끔직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가죽채찍은 하룻동안 물에 담가 불려놓아 무게를 무겁게 만들었는데, 이 채찍으로 맞는 다는 것은, 멍이드는 것은 기본이고 살이 뜯겨져 나갔습니다. 3세기의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내장의 일부가 노출됐다고 합니다. 이 채찍질은 형벌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죽음의 직전까지 가게 하는데,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로마 병사들로부터 39대의 채찍질을 맞으셨다고 전해집니다. 40번까지 때리는건 율법으로 금했는데 그들은 그보다 한대 덜한 39대의 채찍질을 한 것이죠. 채찍질은 옷을 벗긴 채 그의 등에 직접 가했으며 그로 인해 온몸은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졌고, 온 몸이 피로 뒤덮혔을 것입니다.
이 채찍질이 얼마나 혹독했으면, 채찍질만으로도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형수들은 어차피 십자가에 달려 고통 받기 전에 채찍질로 죽여달라고 뇌물을 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2.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채찍질이 끝나고 온 몸의 살이 너덜너덜 해진 상태로 예수님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30~50kg, 길이는 2~3m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이미 예수님은 온 몸이 채찍으로 인해 심각하게 찢긴 상태였고, 탈진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거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짝만 움직여도 살속에 파고드는 십자가의 나무조각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더 고통스럽게 했을까요?!
예루살렘은 오르막길이었습니다. 수십번, 수백번 넘어졌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표현하기를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불로 몸을 달구는 고통보다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예수님이 고통중에 넘어지실때마다 로마군병들의 채찍이 날라왔습니다.


실제로 패션오브크라이스트의 주연을 맡은 짐 카비젤의 간증이 화제인데요. 한번 들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3. 벌거벗겨지다

사형수들은 온 한 자락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속옷까지 벌거벗겨진 상태로 처형되었다는 것입니다.
옷을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극심한 영향을 미치게 되죠. 당시 사회에서 '옷'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옷을 벗겨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굴욕감과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철저히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또한 초상적인 의미로는 옷을 벗는 행위는 죄악과 부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는데, 옷이 벗겨져 처형되는 것은 피해자의 영혼까지도 더럽혀졌다는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욱 큰 심리적 압박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4. 손목과 발 뒤꿈치에 대못을 박다

흔히 그림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표현할 때, 손과 발 등에 못이 박힌 모습을 볼수 있지만, 실제로는 손목과 발 뒤꿈치에 못을 박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의 유골을 발견해 확인해본 결과, 드러난 사실이었죠.

손목과 발 뒤꿈치에 못을 박았다라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손목과 발 뒤꿈치는 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 그 곳에 못을 박는 순간 날카로운 통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을 지탱하려면 얼마나 큰 못으로 박아야 할까요? 7인치에서 5인치 정도의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못이었다고 합니다. 
이 못의 크기 때문에 고통을 말할것도 없고 대못이 박힌 부위는 계속 벌어지고 더 찢겨져 갔습니다.


5. 근육경련과 질식, 탈골

십자가에 매단 채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방치하는데 지금부터 최악의 고통의 시작입니다. 온몸의 통증과 함께 못박힌 팔이 늘어나다 결국 어깨가 탈골됩니다. 그리고 온 몸의 관절들도 서서히 어그러집니다.
양 팔이 대못에 고정되어 있어 가슴을 압박하고 폐와 횡경막을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때문에 사형수는 생존 본능상 몸을 올려서 숨을 내 쉬려고 하는데 몸을 세우려면 못박힌 손목과 발목에 힘을 줘서 몸을 들어올려야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힘을 배면 또다시 숨을 못쉬는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 과정을 숨이 끊어질때까지 반복하는 것입니다.


6.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 깨었다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을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하죠.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질식사하거나 산독증에 빠져 심장의 불규칙으로 심장이 터지거나 정지해 사망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1~36절에 유대인이 안식일을 앞두고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예수와 두 도적을 처리해 달라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로마 병사들이 가서 두 강도의 다리를 꺾어 죽였는데 예수는 이미 죽었으므로 시체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강도의 다리를 부러뜨린 이유도 이제 그만 질식사 해서 빨리 죽으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어떻게 느끼셨나요? 우리가 흔히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듯이 뭔가 성결하고 깨끗했던 십자가형이 이렇게나 지독하고 고통스럽고 잔혹한 형벌이었다는 것이요.
그 고통이 어떻게 이 글로 표현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이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누가복음 23:4)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누가복음 23:22)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사도행전 13:28)


그럼에도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을까요? 피하셔도 되셨을 일을 왜 감당하셨을까요?
그것데 대한 대답은 이 글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죄를 끌어안고 스스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그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한번 가슴 깊이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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