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중간사2. 아테네와 스파르타vs페르시아제국

성경의 중간사2. 아테네와 스파르타vs페르시아제국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배경을 설명하자면,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한 나라는 아시리아(성경에서 앗수르)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리아는 무력으로 주민들을 다스려 반란이 일어나 곧 멸망하게 됩니다. 그 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이 분열되었던 오리엔트 세계를 다시 통일하게 되죠.






독립 도시형 국가 폴리스

당시 그리스는 도시들마다 서로 독립되어 있는 형태의 나라였습니다. 독립 도시형 국가를 '폴리스 국가'라고 불렀는데 이는 도시들이 독립되어 자치권을 각각 갖고 다른 폴리스를 간섭하거나 간섭받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도시가 수백개가 있었고 가장 번창한 곳이 '아테네'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2대 도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스의 2대 도시국가


1. 아테네

아테네도 처음에는 왕이 지배했었지만 도시끼리의 많은 전쟁으로 평민들까지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평민들이 권리 주장을 하게 되고 귀족 세력이 형성되자 왕을 몰아내고 귀족들이 집단으로 지배하는 체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서 오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법재정에 관련된 것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하지만 결국 기원전인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정권을 잡음으로 아테네는 다시 질서를 되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 클레이스테네스는 위험인물을 투표해서 추방하는 제도를 마련해서 현재까지 민주 제도 아래 투표의 첫걸음의 인물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이 후에는 페리클레스가 정권을 잡았는데 그는 독재자이긴 했지만 현재의 올림픽경기의 시초가 된 올림피아, 연극 등의 문화를 시작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테네는 예술을 사랑한 민주 도시로 변화하였습니다.



2. 스파르타

아테네의 남서쪽에는 스파르타라는 도시 국가가 있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북방에서 침략해온 도리아인이 세운것인데 오랜 세월동안에도 원주민들과 융화하지 못하고 순수한 도리아 인으로 남아 적은 숫자로 많은 수의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반란과 폭동이 쉬지 않고 일어났는데 스파르타인들은 그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군대 병영안에서 먹고 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파르타는 하나의 커다란 군대였으며 스파르타의 시민은 모두가 군인이었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선별되어지는데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려져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여인들은 울 수가 없었죠. 눈물은 스파르타인들에게 큰 수치였으니까요.

스파르타에서 남자아이가 7세가 되면 집을 떠나 군대에 입대합니다. 이 때 집을 떠나는 아이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고 해요.
"전쟁에 나가거든 살아서 방패를 들고 들어오던가 그 방패 위에 얹혀서 돌아오거나."
아이에게 승리가 아니면 죽음밖에 없는 입대였던 것이죠.

아이가 입대하면서부터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는데 어린 아이의 옷을 벗겨 채찍질을 해 비명을 지르지 않는 소년들만 합격시켰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때까지 모진 채찍질을 계속 했다고 합니다. 소년들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맨발에 망토 한벌이 전부였고 겨울에는 얼음물 목욕으로 정신무장을 했으며,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먹을 것을 도둑질하는 것까지 배운다고 합니다. 도둑질하다가 행동이 느려 발각될경우 큰 벌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제공되는 식사는 너무 부실했고, 잠을 자는 공간조차 자신이 뜯어온 풀 위에 누워자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국가의 성격

바다에 잇대어 있는 아테네와 계곡 깊숙이 자리잡은 스파르타의 지리적 조건에서 보이는것처럼, 두 폴리스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문화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테네는 외국인에게 너그럽고 상업과 무역에 힘썼으며, 전쟁 때에는 배를 만들어 강력한 해군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스파르타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의 사회로 화폐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외국인 또한 싫어했습니다.
스파르타 섬주민들을 정복해 그들을 국가 소유의 노예로 삼아 농삿일을 하게 하고 그들에게 거두어들이는 공납으로 생활했고 아테네는 무역활동으로 수입해 온 노예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빚을 진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두 폴리스가 공공의 적이였던 페르시아와 맞서 하나로 단결합니다.



동방의 통일제국 페르시아


페르시아 고레스왕(키루스 2세)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폴리스들이 번창하고 있을 때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성경에서는 고레스 왕)는 신 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지중해까지 넓히게 됩니다. 키루스 2세는 폭군이 아닌 현명하고 부드러운 왕으로 적이었던 바빌로니아(성경에서는 바벨론)에서도 해방자로 환영받았고, 노예로 끌려 와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냈으며 정복한 땅에서 일체의 약탈을 금지했고,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

키루스 2세의 곁에는 훌륭한 지혜와 충고로 이끌었던 인물인 '조로아스터'가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였죠.
그는 기원전 600년 새로운 종교를 열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였습니다. 당시 다신교 국가였고 특히 태양의 신 '미트라'를 주 신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그는 빛과 진리, 착함의 신인 '아후라마즈다'신과 어둠과 거짓과 악함의 신인 '아리만'이라는 두 신만이 존재한다고 하며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선함을 이루어야 함으로, 마음속의 '아리만'신을 몰아내야 한다는 사상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이 다른 오리엔트 지배자들이 난폭하고 잔인한 폭군이었던 것에 비해 키루스 2세가 너그러운 정치를 했던것을 이 조로아스터의 가르침 덕이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리우스의 출현

키루스 2세가 세상을 떠나자 페르시아 제국에 다시 반란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 때 '왕중의 왕'이라 불린 키루스 2세의 아들 '다리우스'가 이를 누르고 페르시아 세계 최강의 대제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다리우스 왕때 오리엔트의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엄청난 통일 제국을 이룩했는데 동으로는 인더스강, 서로는 이집트, 북으로는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 강에까지 이르렀을 정도로 방대했습니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20개 주로 나누고 귀족 출신들을 주지사로 임명해 '왕의 길' '왕의 눈'을 만들어 절대적 왕권을 확립했습니다.


영화 300의 한 장면

다리우스 왕의 권위는 대단했고 그의 야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리우스의 왕에게 눈의 가시였던 세력들이 다름아닌 그리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발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이 작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그리스도 사신을 보내 항복의 표시로 '물과 흙'을 달라고 하죠.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이 사신들을 살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특히 스파르타에선 우물에 던져 넣으면서 그곳에 흙과 물이 많으니 실컷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의 막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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